파이어족의 허상 : 노동의 가치와 앞으로의 미래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파이어족(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그러나 이제는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도, 언론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유행이 잦아들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개념 자체가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었는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말로 일을 하지 않고도 생활비 수준의 현금흐름만 확보되면 인생의 미션을 클리어한 것이고, 은퇴해도 되는 걸까? 젊은 나이에 그런 현금흐름을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일하지 않고 노는 삶’이 과연 의미 있고 지속 가능한 행복일까?
사실 파이어족의 접근법은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다. 조기 은퇴를 전제로 하면, 남은 수십 년간의 삶에서 맞닥뜨릴 수많은 변수들—건강, 물가, 관계, 삶의 목적 등—앞에서 우리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노는 것도 시험 기간에 잠깐 놀아야 즐겁고, 직장인도 휴가를 내야 진짜 쉼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은,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마주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초조함일 수 있다.
오히려 ‘폐지를 주워서라도 일은 하겠다’는 마인드로 살아야 지출 계획도 현실적이고 마음이 편하다. 자발적 퇴사나 전직 같은 개념을 포장하는 데 ‘파이어족’이란 단어를 오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100세 시대, 그리고 AI 시대를 맞이해 인간 노동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질 것이다. 은퇴가 아닌 전환의 관점에서,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