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발표된 영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표는 솔직히 말하면 충격적이지 않았다. 최근 몇 달간 반복되어 온 패턴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발표치가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면, 트레이더들은 물가 전망치를 상향시켰고, 영국의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고, 조달비용은 상승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됐던 것이다. 이는 결국, 주택담보 대출자들의 불안감 증가로 이어지고, 정부에서는 이에 대한 조치들을 고민하는 것이다. 지난 6월 21일 발표된 영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표는 잘 짜여진 각본처럼 이런 스토리의 반복이었다. 헤드라인 물가 수치는 지난달과 동일한 8.7% 증가했으며, 이코노미스트들의 8.4%로 하향될 것이라는 전망을 상회했다. 보다 불길한 징조는 근원 물가지표에서 나왔는데, 음식료와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는 지난달 6.8%에서 오히려 증가한 7.1%로 발표되었다.
영국의 최근 물가는 주변국들과 비교했을 때, 좋지 못한 방향에서 '아웃라이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유로존 국가들의 근원 물가 수치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점진적으로 하락하며 최근 5월 5.3%로 떨어졌으며 헤드라인 물가의 경우 보다 가파른 하락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G7 국가들로 한정하면, 영국 보다 높은 물가를 보이는 국가는 없다. 이탈리아 정도만 비슷한 수치를 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도 7.6% 수준이며, 추이를 살펴보면 분명히 하락하고 있다. 영국 수준의 물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는 국가들을 보려면 경제 규모가 작은 오스트리아, 아이스랜드 혹은 스웨덴 정도를 뽑을 수 있고 아니면 여전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영국은 높은 천연가스 가격을 부담하고 있다. 이를 제외한다면, 영국이 나타내고 있는 고물가의 원인은 내부적인 의사결정의 결과라고 보는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가 상승 압력은 영국산이라 할 수 있다. 전쟁, 공급망 차질 혹은 높은 글로벌 식품 가격 등 외부요인에 의해 영국의 물가가 상승했다는 진부한 핑곗거리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영국의 서비스 물가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내수요인인데 4월 6.9%에서 5월 7.4%로 전년동기 대비 상승률을 기록했다. 재화 물가는 9.7%에서 10% 수준으로 하락했는데 식품가격 상승률이 이전보다 둔화됐기 때문이다.
영국 물가 상승의 주원인은 다양하다. 해리 왕자가 최근에 출간한 고가의 회고록이 인기를 끈 것이 원인이라는 주장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자. 그렇지만, 문화 지출의 하부 카테고리 항목을 살펴보면, 비소설 서적의 가격이 전년동기 29.4% 상승하는 등 물가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실증적인 질문은 어떻게 출판사에서는 그렇게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탄탄한 이유는 정책입안자들이 오랜 기간 수요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재정 지출을 살펴보자. 영국이 팬데믹 기간과 지난해 에너지 위기 당시에 살포한 재정 부양책의 규모는 두드러진다. 영국 보다 많은 지출을 한 국가는 미국 정도를 뽑을 수 있다. 영국이 국가수입의 23.1%가량을 지출한 반면, 프랑스는 13.3% 수준에 그쳤다.
영국의 통화정책 또한 지탄을 받을만 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BOE는 너무 신중했다. 테일러 룰만 적용해 보아도 주어진 실업률과 근원 물가 수준을 고려할 때 적정한 금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가능하다. 한편에서는 영국이 기준금리를 약 5.7%까지 상향할 준비를 했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뒤늦게, 영국의 중앙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4.5%에서 5%로 상향 조정해, 25bp 수준을 예측한 시장을 놀라게 했다. BOE의 의사록은 물가가 기존 전망 대비 더 견고했음을 보여준다.
정책적인 실수 뿐만 아니라, 공급도 큰 문제이다. 영국은 또다시 좋지 못한 부분에서 주변 국가들 대비 도드러 진다. 영국의 노동참여율은 팬데믹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다. 참여율이 올라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약 50만 명 정도는 다시 일터로 복귀하기에 너무 병약하거나 나이를 먹었을 수 있다. EU 국가들의 노동자들도 복귀하지 못했다. 브렉시트 이전에는, 비 EU 이민자들이 난민 또는 학생 신분으로 노동 시장에 유입됐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 대비해 총 노동공급량이 3%가량 감소했다고 한다. 팬더믹 이전에는 이민과 참여율 증가로 노동참여인구가 증가했었다.
높은 수요와 제한된 공급은 경제의 일부분에서 상반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숙박과 서비스 부분은 인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의료 부분은 노동적체와 파업으로 인해 정상적인 서비스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가는 빠르게 떨어질 필요가 있다. 미국 연준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의 물가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노동인구가 갑자기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해서는 안된다. 경제활동률은 보다 적은 은퇴자들의 숫자와 보다 많은 학생들이 일자리로 유입되면서 약간의 개선세만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은 금리 상승에 기대는 것이다.
이는 즉 부채 부담이 큰 주택담보대출자들의 재정적 부담이 증가함을 의미한다. 제레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은 물가 상승 압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주택담보대출 이자에 대한 세율공제 확대 등 정부의 지원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럼에도 장관은 6/23일 은행 관계자들을 초대해 회의를 가졌으며, 부채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차입자들을 대상으로 '유연성'을 보여줄 것으로 요구했다. 만약 영국의 고질적인 물가와 지속적인 금리 상승을 해소하고자 한다면, 헌트 장관은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바로 세금 인상이다.
출처 : The Economist (Britain’s inflation pain is mostly self-inflicted and getting w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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