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던 미국과 중국의 기조 변화 조짐
미국과 중국이 어떤 문제에 있어서도 이견을 보이고 충돌하고 있지만, 한 가지 일관된 입장을 함께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대만일 것이다. 다소 불편한 관계 속 대만 열도의 평화는 지난 60년 이상 지속해왔고, 미국은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러한 균형에 미세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 대만 방문으로 촉발됐던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조짐을 보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펠로의 의장은 본인의 권리를 행사했다고 볼 수 있지만, 분명 도발적인 의도가 있었다. 중국은 격양된 반응을 나타내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1995-96년 리덩후이 대만 총통의 방미와 첫 직접선거로 인해 촉발됐던 위기 이후, 위태로운 평화가 놓여있던 모호함과 모순에 대해 중국과 대만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중국은 특히 대놓고 공격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세계가 전쟁을 피하고 싶다면 새로운 균형을 긴급히 모색해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급변한 상황이 양국 간 관계 변화에 일부 기여하고 있다. 2,400만 인구의 대부분이 한족으로 이뤄진 대만은 군부 독제 국가에서 보다 풍요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탈바꿈했으며, 대만인들의 소득 수준은 중국 본토보다 2배 이상 높다. 대만의 경제적 성공은 중국의 독재 정권 입장에서는 암묵적 질책이며, 대만인들이 중국의 통지를 받지 않으려는 분명한 이유일 것이다. 대만 총통은 독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중국과의 거리를 두고 있다. 중국의 일국양제 제안은 홍콩의 상황을 봤을 때 공허하게 들린다. 오늘날 대만인들 중 중국으로의 즉각적인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왜냐면, 이는 직접적인 침략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국과의 합병에 찬성하는 이는 더 드물다.
미국도 변화하고 있다. 50년 대에 대만을 보호하기 위해 2차례 참전한 이후, 대만을 보호하는 것에 실익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있었다. 그렇지만, 대만 내 민주주의의 부흥과 반도체로 인해 대만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들은 대만에 대한 미국의 단호한 지지를 유사시 미국의 지원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험대로 간주한다. 미국은 대만을 보호하겠다고 직접적인 선언을 한적은 없지만,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갈등의 심화와 미국 내 정치인들이 대중 강격노선을 취하면서 유사시 미국이 대만 보호를 위해 참전할 것이라는데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참모들이 이후 뒤처리를 하느라 고생을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도 관련해 수 차례 발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균형을 파괴하는데는 중국의 역할이 컸다. 평화가 지속될지 여부는 시진핑에 달렸다고 해도 무관하다. 중국이 부강해지면서, 시진핑은 과거 외세에 의해 겪었던 굴욕적인 경험을 강조하며 편집증적인 민족주의 노선을 펼치고 있다. 시진핑은 대만과의 통일을 2049년으로 내세운 민족부흥 목표와 연결시켰다. 중국 해군은 미군보다 많은 함선을 보유하는 등 대만에 대한 무력 침공 역량을 키우고 있다. 워싱턴 내 일부 고위 군계자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향후 10년 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행히도, 이번 펠로의 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촉발된 위기에서 중국의 대응은 공격적이었지만 분노와 힘을 표출하면서도 갈등의 수위는 조정하는 다분히 계산된 모습이었다. 중국은 군을 파견했지만, 전쟁을 시작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며, 미군도 비슷한 대응을 보여줬다. 미군은 정기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 테스트도 연기했고, 펠로시 의장은 남중국해의 중국 기지를 지나치지 않기 위해 항로를 조정했다.
새로운 위험은 중국이 이러한 갈등을 활용해 대만의 영공과 영해에 새로운 경계선을 설정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또한, 대만과 거래하는 국가들에 보다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발생해서는 안된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들의 과제는 중국의 이러한 행위를 저지하면서도 전쟁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것이다. 미국은 위기 이전에 준수되었던 규범들을 재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군은 대만해협과 중국이 본인들의 영해로 주장하는 국제 수역들에서 군사 활동을 즉각적으로 재개해야 된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대만의 유사시 작전 계획 등을 포함한 군사훈련을 지속 확대해야 한다. 중국이 발사한 미사일이 일본 인근에 떨어졌을 때, 일본은 전쟁에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고, 이러한 대응은 중국의 침략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목적은 이러한 침략이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중국으로 하여금 납득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대만 군을 훈련시키고 무기 공급을 확대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하지만, 대만은 대만 고위 군관계자들이 탐내는 값비싼 무기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증명된 것처럼 작고 기동성 좋은 무기를 활용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대만은 중국이 쉽게 넘볼 수 없도록 '호저'가 되어야 한다. 우크라인처럼, 대만인들도 스스로 방어할 수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대만군은 오랜 기간 부패와 낭비, 스캔들로 곪아왔다.
때때로 공개적으로 중국과 대립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종종 큰 실익 없이 분쟁만 일으키는 사례가 있다. 일본과 호주를 포함한 G7 국가들은 중국의 미사일 발사를 비난했지만, 한국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침묵을 지켰다. 중국의 도발을 비난하면서도,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지해야 한다. 미국 의회는 대만에 실질적인 이익은 없이 상징성만 지닌 행위들을 지양해야 한다. 이런 것 대신에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어떨까?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시진핑의 야욕의 최우선순위는 권력의 안정적인 연임에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르쳐준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이는 손쉽게 승리할 수 있어 보이는 전쟁도 실전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만은 중국의 침략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점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시진핑이 전쟁의 승리에 의구심이 들 수 있을 만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출처 : How to prevent a war between America and China over Taiwan (The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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